분트 “농사, 방식 바꾸면 탄소 저장 가능···여성 농민은 재난 해결의 주체” [기후정의행진 릴레이 인터뷰③]

작성자: 또또링2님    작성일시: 작성일2025-09-22 14:47:55    조회: 229회    댓글: 0
분트 농부 유화영씨의 하루는 오전 5시30분에 시작한다. 식사와 새참을 준비하고 닭에게 모이를 준다. 아침을 먹고 채비해 밭으로 나간다. 해가 뜨거워져 ‘더 일하다가는 쓰러지겠다’ 싶을 때 집으로 돌아온다. 날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정오 즈음이다.
점심을 먹고 한숨 돌린 뒤 ‘농사일인지 집안일인지 요리인지’ 싶은 일들을 한다. 쪽파를 다듬고, 콩을 까고, 고구마순을 다듬는다. 해가 기울면 다시 밭으로 향한다. 해가 길면 하루 15시간도 일한다. 해가 짧으면 짧은 대로 한꺼번에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해 숨 가쁘다. 계절과 날씨를 타지만 휴일은 없는 게 농부의 일상이다.
9년 차 농부 유씨를 충남 논산 한 카페에서 만났다. 2016년 서울을 떠나 이곳에 터를 잡은 유씨는 단호박, 감자, 양파, 쪽파, 당근, 들깨, 보리 등 다양한 작물을 농사짓는다. 평생 농사를 꿈꿨다는 그는 실제로 해보니 농사일이라는 게 육체적으로 아주 힘들다고 말했다.
기후재난 시대, 농사는 이런 노력을 배신한다. 그는 ‘농사만큼 정직한 게 없다’는 말도 다 옛말이라며 아무리 정성껏 가꿔놓아도 폭우에 한 번 쓸려가 버리면 아무것도 안 남고, 작물이 폭염에 다 타버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큰 재해가 없었다던 논산에는 2023년부터 2년 연속 ‘괴물 폭우’가 내렸다. 유씨네 밭에도 물이 들이쳤다. 하우스 두 동과 모든 농지가 손바닥만큼도 안 남기고 다 물에 잠겼다. 2년 전에는 허리까지 물이 찼고 작년에는 가슴 높이까지 찼다. 작년엔 한 번도 아니고 7월과 9월, 그렇게 두 번 비가 왔다고 그는 회상했다.
첫 폭우는 하우스 안에 수확을 앞둔 단호박이 주렁주렁 열려 있을 때 내렸다. 막 수확한 양파 1t은 하우스 바닥에 깔아 말리고 있었다. 유씨는 그해 양파 농사가 엄청나게 잘됐다. 지금까지 지은 것 중 제일 잘 됐는데, 그 양파가 물에 잠기는 걸 볼 수가 없어서 승용차로 10번을 날라서 구출했다고 말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양파는 구해냈지만 단호박은 그대로 못 쓰게 됐다. 그는 ‘저걸 팔아야 돈이 되는데’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전에 내가 죽을 똥 살 똥, 아글타글 애쓴 시간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비 소식이 있는 날이면 강수량 예보에 상관없이 유씨는 마음을 졸인다.
폭염도 농사를 어렵게 만든다. 작물은 더위를 버텨내느라 작은 열매를 맺는다. 겨우 맺힌 열매가 땡볕에 삶아지기도 한다. 양파는 수확한 뒤 며칠 동안은 캔 자리에서 건조하는데, 날이 뜨거우면 땅과 닿은 부분이 납작해진다.
기후위기 때문에 농사에 드는 노력과 비용은 배가 됐다. 유씨는 사과 농사를 지으면 봄에 꽃을 솎아줘야 하는데, 요새는 냉해가 언제 올지 모르니 조금 따고 지켜보고, 조금 따고 지켜보는 식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잎사귀나 가지를 치는 일도 마찬가지다. 예전 같으면 한 번에 해버릴 일을 날씨 눈치를 봐가며 조금씩 하니 인건비가 몇 배로 든다고 설명했다. 생산비는 몇 배로 올랐는데 농산물 가격이 조금 올랐다고 논란이 되면 허탈한 마음이 든다. 그는 가격이 오른다고 농민이 떼돈을 버는 게 아니다. 그만큼 망한 농민이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 최전선에는 여성 농민이 있다. 유씨는 여성 농민은 대부분 대형 농기구를 쓰지 않고 낫이나 호미 같은 작은 농기구를 이용하거나 맨몸으로 노동한다며 폭염·폭우 같은 기후재난에 직접 노출돼 있어 밭에서 일할 때면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농민은 기후위기의 피해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 해결의 주체다. 유씨는 농사는 탄소를 배출하기도 하지만, 방식을 조금만 바꾸면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 다른 어떤 산업도 하지 못하는 일을 여성 농민들이 하고 있다고 했다.
유씨가 속한 여성농민 협동조합인 ‘언니네 텃밭’은 친환경·유기 농업을 지향하고, 전통 농업 복원을 위해 토종씨앗을 지킨다. 친환경·유기 농업은 대표적인 온실가스 감축 활동이다. 토양의 유기물 함량을 늘려 대기 중 탄소를 저장한다. 유씨는 매년 귀향초, 사과참외, 검은찰옥수수, 쇠뿔가지, 제비콩, 보라완두콩 등 씨앗을 뿌리고 다시 거둔다. 우리 땅에서 자라온 작물을 매년 직접 심고 거두면 거대기업이 냉동고에 보관한 씨앗보다 기후위기 시대에 더 잘 살아남으리라고 믿는다.
당장의 수익만 생각하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돈도 더 들고 손도 더 간다. 시장에서 선호하는 크고 예쁜 작물을 생산하기도 어렵다. 유씨는 개인에게만 맡겨두면 이런 농업을 이어가기 어렵다며 정부가 ‘기후생태직불금’ 등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민들이 기존의 ‘관행 농업’을 생태적인 방식으로 전환하고 이를 지속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유씨는 오는 27일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다. 그는 개인의 실천은 너무 한계가 있고 언제까지 기업의 양심에 호소할 수는 없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실천은 정치에 요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탄소를 덜 배출하는 사람들이 기후위기의 피해를 더 많이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더 많이 배출하는 집단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행진에 간다고 말했다.
볕이 잘 들어 양동(陽洞)이라 불린 동네가 있다. 서울 남산 언덕배기. 전후 판잣집이 즐비했고, 불이 나 전소되면 다시 집을 지어 올리던 질긴 주민들이 있었다. 성매매 집결지와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세방, 가난한 가족들의 집이 있던 곳은 이제 빌딩 숲속 쪽방촌이 됐다. 여름엔 사방 빌딩에서 나오는 열기에 찜통이고, 겨울엔 양동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그늘진다.
2019년, 쪽방을 헐고 빌딩을 짓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주민들은 불안했지만 어디서도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 무렵 인근 시장엔 ‘후암동에 쪽방촌 웬 말이냐, 절대 반대’ 현수막이 걸렸다. 주민들을 근처 고시원과 상가로 흩어 이주시킨다는 계획 때문이었다. 정작 주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했다.
천덕꾸러기를 만든 건 법이었다. 한국의 정비법은 기묘하다. 업무용 빌딩을 지으면, 그 땅에 세입자가 살아도 임대주택을 지을 의무가 없다. 수백 명이던 주민은 법의 언어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더 많은 개발이익을 노린 쪽방 건물주들은 리모델링, 붕괴 위험을 핑계로 주민을 내쫓았다. 2019년 471명이던 주민은 2021년 230명으로 반 토막 났고, 퇴거는 이어졌다.
그러자 주민들이 나섰다. 2021년, ‘양동쪽방주민회’를 꾸렸다. 나이 든 주민들이 저린 다리를 끌고 시청과 구청을 찾았다. 기자회견도, 면담 요청도, 정치인 뒤를 쫓는 피켓 시위도 서슴지 않았다. 2021년 쪽방 폭염대책 점검 차 양동을 찾은 오세훈 시장에게 더위도 문제지만, 재개발로 거리에 나앉게 생겼으니 대책을 내달라 호소했지만 시장은 공연히 골목에 소방수만 뿌리고 떠났다. 그날 기자들이 혹시라도 목소리를 담아주길 기다렸지만 헛수고였다. 그래도 주민들은 버텼다. 그동안 쫓겨났던 집들을 곱씹으며, 적법한 이주 보상은 고사하고 쓴소리 뒤에 건네받은 몇푼의 모욕을 떠올리며, ‘여기서마저 쫓겨나면 더 갈 곳이 없다’는 절박함으로 견뎠다.
2025년 9월. 쪽방은 철거가 한창이지만, 바로 옆 새 임대주택에 주민들은 끝내 입주했다. 14㎡ 원룸. 평생 집으로 삼기엔 작지만 싸워서 발기부전치료제구입 얻었기에 값지다. 주민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이곳엔 또 다른 빌딩이 들어섰을 것이다. 이 집은 정부의 선물이 아니라 주민들이 쟁취한 권리다.
그러나 모두가 이날을 맞이하진 못했다. 입주한 이는 140명 남짓. 이미 세상을 떠난 이웃도 있고, 임대주택 추첨은 했지만 병상에 누운 이도 있다. 갖은 퇴거 압박에 양동을 떠나 또 다른 쪽방을 전전하는 이들도 있다.
양동의 승리는 달콤하기보다 쓰라리다. 비로소 이름처럼 해 드는 창을 가졌지만 이미 떠난 이웃들을 떠올리면 웃을 수만은 없다. 주거가 권리라면, 왜 이렇게 늦게, 왜 이토록 험난하게 쟁취해야만 했을까. 양동 주민들은 바란다. 길 건너 동자동 쪽방촌도 어서 새벽이 지나 햇살이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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